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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커스

퇴사의 예절, Joey Quits






발랄하다. 회사를 때려치는 순간이란다. 웬 제임스 프랭코를 닮은 훤칠한 남자 한 명이 친구들을 이끌고 풍악을 울린다. 사표를 땅바닥에 떨구는 그의 득의양양한 표정. 시끌벅적한 관악기와 타악기의 향연. 당사자보다 더 신난 벗들.


기사의 제목만 봤을 때도 '우리나라 일은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선 워낙 '떠나는 자의 미덕'을 강조한다. 죽어라 밉던 상하관계에서도 헤어질 때만은 여지없이 "좀 서운하긴 했지만, 행운을 빈다" 류의 드립이 이어진다.


예의바르지만, 왠지 변비에 걸린 듯한 사회적 미덕이다. 엄연히 존재했던 부조리와 폐단들, 누군가는 분명히 책임을 져야했을 잘잘못과 오해들은, 결국 아침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방식으로 훈훈하게 봉합된다. 이걸 드라마틱하게 느끼고 싶다면, 말년병장의 전역 전날 밤 내무실 풍경을 엿보기 바란다.


그렇다면 제임스 프랭코를 닮은 이 청년은 왜 이런 '똘아이' 짓을? 기사에 따르면 이러하다.


동영상을 올린 조이는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한 호텔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3년 반이나 일했지만, 근무 환경은 끔찍했다”고 했다. 그는 “주방 근무자들은 오전 5시30분까지 출근해야 했고, 10시간이 넘는 교대근무에 시달려야 했다”고 했다. 또 “객실청소 담당자들은 9시간 교대 근무를 했는데 이 시간 동안 객실 16개 이상을 청소하지 못하면 크게 질책당했다”라면서 “매니저들이 직원들에게 마구 소리도 질렀다”고 했다.


조이는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다녔던 호텔에는 노동조합이 없었고, 이번 밴드 사퇴식도 홀로 기획한 것이라고 했다.


저 봉변을 당한 간부의 똥 씹은 표정을 보라. 부르주아는 진지한 용어이고 역사적인 용어지만, 나는 부르주아가 결국은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인간형이라고 믿는다. 똥 씹은 표정을 지닌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언가를 지켜야 하는 인간이며, 자신의 소유물을 뺏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고독한 인간이다. 자신의 입에 담긴 걸 절대로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는 인간이다.


조이와 그의 친구들을 보라. 아마 저 간부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면서 그렁저렁 사는 청춘들일 게다. 직업이나 있으면 다행일 별볼일 없는 젊은이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저 한 순간 만큼은 저들의 똘끼가, 사회적 신분과, 회사라는 제도와, 규범과, 말하자면 온갖 류의 '세속적 기준'들을 전복시킨다. 거기에 건강한 웃음과 우정까지 함께하니, 이런 유쾌한 '전복'엔 분명히 예술성이라고 불릴 만한 게 깃들어 있다. 고미숙 누나 컴온!

 
"예술가의 직관력과 감성은 사람들과 분리되는 능력으로서 존재해선 안 된다. 거꾸로 사람들을 엮어주고 사람들 사이에 전혀 다른 기운을 불어넣는 능력으로 변환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술가들의 작업장은 사람들의 웃음소리, 떠들썩한 수다, 풍성한 음식으로 가득해야 한다."


혹자는 그래도 저런 사회적 규칙의 위반(반달리즘)에는 무언가 마초성이랄까, 폭력성이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한 사람이라도 상처 입는 혁명은 진정한 혁명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반론이 있다.


하나는 때론 '악'으로써 '선'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 세계의 냉정한 면을 똑바로 보자는 것이다. 우리들 대다수가 회사 생활에서(심지어는 사표를 '공손하게' 내미는 그 순간까지도) 얼마나 비굴해지기 쉬운 존재인가를 반성한다면 이 답은 쉽게 나온다. 사실 그게 이 동영상이 백만 명이 넘는 유튜브 조회수와 만 개가 넘는 '좋아요'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좀 더 근본적인 차원이다. 이것이야말로 어려운 문제이고, 슬픈 문제인데, 왜 조이는 저런 형편없는 직장에서 3년 반씩이나 일할 수밖에 없었냐는 것이다. 우린 왜 저런 일자리가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어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사실은 얼마나 '더러운 규칙'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똑바로 본다면, 저 젊은이들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시사인 김은지 기자가 러브호텔 청소부를 직접 경험하고 쓴 이 '자극적인' 르포를 읽어보라. (http://bit.ly/h05GaE) 이 세계에 로맨틱한 해방구는 없다. 누구도 상처주지 않는 '똘끼'가 없는 것처럼, 청소하는 사람 없는 달콤한 섹스도 존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미국의 조이는 결국 우리 곁의 조선족이고 몽골족인 것이었다. 이제 포털에 실렸던 조이의 기사에 달린 (찬성이 압도적이었던) 베플 두 개를 한 번 읽어보자.


1. (위에 옮겨적은 조이의 상황을 죽 인용한 후) 우리나라에선 늘 있는 일인걸요......
2. 대한민국은 학연, 지연 등으로 소문 퍼져서 같은 업종에선 근무 못한다......






나는 이 사진은 꼭 블로그에 올려두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의 엄청난 공감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던 삼화고속 버스기사의 월급명세표. 한달 379시간 노동, 시급 4727원에 이런저런 공제금과 세금을 제하고 나면 실수령액은 140여만원… "우리나라에선 늘 있는 일"이라는 사람들의 통찰은 정말 너무나 정확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미국 젊은이 조이가 친구들과 함께 보여준 '퇴사의 예절(예술!)'은 우리의 가슴을 즐겁게 후벼파주었다. 조이는 자신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미 다른 곳에 직장을 구해 잘 다니고 있으니 걱정 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러브호텔 메이드와 삼화고속 기사들처럼, 젊고 훤칠한 젊은이가 아닌, 그래서 더러운 회사를 신명나게 때려칠 수도 없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나. 조이에게 물어봐도 뾰족한 답은 없을 것 같다. 월가의 시위가 한창이고, 저 친구들은 거리 위에서 쿵짝쿵짝 다시 '막간의 예술'을 선보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